- 도로명 주소
- 전남 신안군 암태면 단고리 542-1
암태도 의사 서태석 선생 추모비·농민항쟁사적비의 전체 정보
- 여행지 경도
- 126.113631
- 분류
- 관광지
- 여행지 누적 관심수
- 0
- 여행지 누적 추천수
- 0
- 여행지 등록일
- 2020-05-07 14:34
- 여행지 코스소개
- 암태도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소작쟁의이자, 한국 농민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암태도 소작쟁의가 일어난 현장이다. 쟁의가 발발한 1920년대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 증식 계획으로 전국 농민 80%가 소작농으로 전락한 상황. 암태도역시 소수 자작농을 제외한 대다수 농민이 소작농이었고, 토지는 대부분 지주 문재철 소유였다.문재철은 일제의 저미가 정책으로 수익이 감소하자 7~8할에 이르는 소작료를 징수해 손실분을 보충하려 했고, 이에 소작농들은 서태석을 중심으로 암태소작인회를 결성해 소작료를 4할로 낮춰줄 것을 요구했으나 묵살 당한다. 1923년 가을추수를 앞두고 시작된 쟁의는 지주 측의 회유와 협박, 소작인회의 추수 거부와 소작료 불납 투쟁으로 이어지며 해를 넘겼다.이 과정에서 목포경찰서가 일본 경찰을 암태도로 보내 소작인을 탄압하고, 마침내 소작인회 간부들을 구속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러자 1924년 6월 암태도 소작인 400여 명이 목포경찰서와 법원 앞에서 구속자 석방 시위를 전개하고, 7월에는 다시 600여 명이 법원 앞에서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전국에서 여론이 들끓고 노동·사회단체의 지지와 지원이 이어지자,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 일제는 구속자 석방과 중재에 나선다. 이에 소작료를 4할로 낮추고, 소작인회에 2000원을 기부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약정서를 교환하면서 기나긴 투쟁은 소작인의 승리로 끝났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일제강점기 대표적 항일농민운동이자 이후 전국에서 일어난 소작쟁의의 기폭제로 평가된다.90여 년이 흐른 지금 암태도에서 식민지 지주와 일제에 대항한 자랑스러운 항쟁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쟁의를 이끈 지도자 서태석의 고향 오산마을 입구에 의사 서태석 선생 추모비와 가묘, 암태도 농민항쟁사적비가 서 있고, 그 외엔 1998년 건립된 암태도 소작인항쟁기념탑 정도가 전부다.
- 여행지명칭
- 암태도 의사 서태석 선생 추모비·농민항쟁사적비
- 지역구분
- 전남
- 태그
- 문화유적
상세 시스템 데이터 보기
- 위도
- 34.826119